상가를 계약하려고 보면, 예상치 못한 항목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권리금’입니다.
임대료나 보증금은 계약서에 명확히 적히지만,
권리금은 그보다 훨씬 불투명하게, 경우에 따라 수천만 원 단위로 오갑니다.
“저 가게 팔리면서 권리금 3천 붙었다더라”
“장사가 잘되니까 권리금이 너무 세졌대”
그런데 이런 말, 유독 한국에서만 들리는 건 아닐까요?
‘권리금’은 언제, 왜 생긴 걸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있을까요?
권리금은 ‘시설비’가 아니다
자리를 지키며 쌓은 ‘영업 기회’에 붙는 가격
먼저 개념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권리금은 건물이나 인테리어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리를 지키면서 쌓아온 ‘영업 기반’에 붙는 가격입니다.
- 그 자리에 오랫동안 영업해오며 생긴 단골
- 주변 상권에서 확보한 입지
- 지나가는 유동 인구와 가게의 접근성
-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설비와 매뉴얼
이 모든 것이 한데 묶여 ‘기회 비용’처럼 작동하는 것이 권리금입니다.
이게 바로,
법적으로는 보장되지 않지만 시장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종의 비공식 ‘시장가’인 셈입니다.
권리금, 왜 생겼을까?
자리의 값이 생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권리금은 법에 딱 정해져 있는 제도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당연한 듯 오가는 돈입니다.
도대체 이런 돈은 왜 생긴 걸까요?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① 가게 자리가 귀해서 생겼어요

옛날에는 도심에 가게가 많지 않았어요.
특히 1950~60년대,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가게를 얻으려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적었던 상황이었죠.
그래서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이 자리, 그냥 넘겨줄 수는 없지" 하고
돈을 받게 되면서 권리금이 생긴 겁니다.
이걸 ‘수급 불균형 설’이라고도 해요.
자리 부족 → 경쟁 심화 → 권리금 발생.
단순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설명이에요.
② 장사하면서 키운 걸 돈으로 받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잘 되는 가게는 거의 없죠.
임차인이 가게를 키우면서 단골 손님, 가게 평판, 노하우 등을 쌓습니다.
이게 바로 그 가게만의 ‘영업 기반’이에요.
이걸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되면,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돈으로 보상받고 싶어지는 거죠.
이런 경우도 권리금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예요.
이걸 ‘영업이익 회수설’이라고 합니다.
③ 나도 줬으니, 나갈 땐 받아야죠

처음에 들어올 때 권리금을 냈다면,
나갈 때도 그만큼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올 사람에게 나도 받아야지" 하는
‘관행 반복’이 또 하나의 권리금 발생 원인이 된 거예요.
이렇게 하나 둘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가게를 넘기면 권리금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문화처럼 굳어진 거죠.
🔍 참고: 온돌뉴스, ‘권리금의 발생 배경과 제도적 논의’, 2024.3.12
(박성규, 2014 / 배병일, 2006 / 다무라 후미노리, 2014 인용)
💡 참고로, 전세제도와도 연결돼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 제도도 권리금 문화와 닮은 점이 있어요.
옛날엔 건물주가 직접 장사하지 않고,
가게만 빌려주고 임차인이 상권을 키우는 구조가 많았어요.
이렇게 키운 자리를 재산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자리를 넘기면서 권리금이라는 금액이 붙게 된 거죠.
하지만 이 권리금은 아직도 법으로 명확하게 보호받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받을 수는 있지만, 꼭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 일본, 유럽은 권리금이 있을까?
자주 비교되는 나라들의 제도를 살펴보면,
권리금과 유사한 개념은 존재하지만, 방식이 다릅니다.
🇺🇸 미국 – "영업권(Goodwill)"은 있지만, 임대와 분리
- 사업체 매매 시 ‘Goodwill’이라는 항목으로 프리미엄이 붙을 수는 있습니다.
- 하지만 이는 사업체 전체의 가치에 포함된 개념이며,
- 상가 임대 계약에서 별도로 권리금을 요구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 게다가 임대차 계약은 대부분 자유롭게 갱신/해지되기 때문에, 임차인이 '자리'를 지키는 개념이 약합니다.
🇯🇵 일본 – "보증금"에 프리미엄 성격 포함
- 일본에도 ‘권리금’ 유사한 개념이 있긴 하지만,
- 통상적으로 보증금(시키킨)과 ‘입회금’이라는 형태로 계약 초기에 정리됩니다.
- 중간에서 개인 간 권리금 거래가 일어나는 건 비공식적이고 드문 일입니다.
🇫🇷 프랑스 – "영업소권(fond de commerce)" 보장
- 프랑스는 오히려 ‘권리금’을 공식 제도로 인정하고 보호합니다.
- 임차인의 영업소(fond de commerce)를 보호하며, 이전 시 제값을 보장받을 수 있게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 다만, 이것은 임대차 계약과 엄격히 분리된 권리로서 관리됩니다.
요약하면,
대부분의 선진국은 권리금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거나,
아예 임대와 분리하여 명확히 규율합니다.
한국처럼 권리금이 ‘비공식적이면서도 실질적으로 꼭 필요한 금전’으로 작동하는 구조는 드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길까?
‘보호되지 않는 돈’을 놓고 벌어지는 분쟁들
-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하면서, 권리금을 날리는 경우
- 권리금 받고 들어온 후, 주변 상권이 바뀌어 손해 보는 경우
- 중개인이 권리금 내역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생기는 갈등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2015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권리금의 액수’나 ‘회수 방식’은 시장에 맡겨져 있습니다.
임대차 계약 전, 이것만큼은 확인해보기
계약 전, 아래 몇 가지만 확인해도 훨씬 덜 억울해질 수 있습니다.
- 권리금이 어떤 것에 대한 돈인지 물어보기
예를 들면, 냉장고·테이블 같은 장비인지,
아니면 단골 손님이나 가게 이름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인지
구분해서 물어보면 됩니다. - 권리금을 받고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누구한테 받을 수 있는 건지, 못 받게 될 가능성은 없는지
중개사나 임대인에게 미리 물어보는 게 좋습니다. -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는지 확인하기
계약서에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 임대인이 허락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는지 꼭 체크하세요. - 근처 비슷한 가게들은 얼마나 주고 들어갔는지 알아보기
같은 동네, 비슷한 크기의 가게를 몇 군데만 비교해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권리금이 생소하거나 불안하게 느껴질 땐,
무리해서 혼자 판단하기보다는 전문가(변호사, 상가 전문 중개사)에게 간단히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권리금을 둘러싼 분쟁은 생각보다 자주 벌어집니다.
특히 장사를 하다 보면 그 자리에 대한 애착이나 노력도 많은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생기곤 하죠.
그래서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아쉽게 다가옵니다.
그만큼 ‘자리’가 생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명확하고, 공정한 제도가 마련된다면
새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기존 가게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조금은 덜 불안한 마음으로 상권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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