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층수는 올랐지만 마음은 더 멀어졌다: 일본 고층 아파트 증후군

시선의 재구성 2025. 4. 1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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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 증후군 이야기

‘좋은 아파트’의 조건을 떠올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조망 좋고, 층수 높고, 커뮤니티 시설 잘 돼 있는 곳.”
하지만, 정말 높이 올라갈수록 더 행복해질까요?
일본 동경대학 출신의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는 여기에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 1. 고층 아파트에 살면 생기는 변화들

일본에서는 고층 아파트를 타워맨션이라 부릅니다.
도쿄 같은 대도시엔 50층 넘는 타워맨션이 수백 채 들어서 있고,
도심 재개발의 상징처럼 여겨지죠.
그런데 이 타워맨션의 고층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특이한 공통점이 관찰됐습니다.

  • 외출 빈도가 줄고,
  • 이웃과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으며,
  • 점점 집 안에만 머무르게 된다는 것.

일본에서는 이를 가리켜
‘무자극 증후군(無刺激症候群)’ 이라고 합니다.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는 아래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 “무자극 증후군”과 고립감은 우연이 아니다

고층 아파트 상층부 거주자들이 겪는 무기력감, 외출 감소, 인지기능 저하는 단순한 개인 문제나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설계된 인간의 뇌가 비자연적인 환경에 노출되며 발생하는 구조적 스트레스이다.

  • 고층 거주는 ‘외부의 소리, 냄새, 접촉’을 최소화 → 감각 자극 부족
  • 이웃과의 만남은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 제한된 경로에 의존 → 우연한 사회적 접점의 상실
  • 지진·재해 시 엘리베이터 정지 등으로 대피 리스크 증가 → 상시 불안감

🧬 인류는 ‘협업’으로 생존해온 종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소규모 집단 내에서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생존해온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고층 아파트의 구조는 이러한 생존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20층 이상에서 이웃과 일 년에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 이는 인류 역사 전체에서 극히 이례적인 환경입니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는 사회적 시그널 교환에 최적화되어 있는데, 고층 아파트는 이러한 흐름을 물리적으로 차단한다.


# 2. 고층에서의 고립감, 단순한 기분 탓일까?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고층 아파트에 거주할수록 우울감·불면증·치매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도쿄대 연구팀은 “층수가 올라갈수록 외부 활동이 줄고,
사회적 접촉이 적어져 심리적 고립이 심화된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 엘리베이터 생활로 인한 신체 활동 저하
  • 수직적 거리감이 주는 심리적 단절
  • 도시 속에서의 고립된 성채 같은 구조
    이런 조건들이 반복되면서, 정서적 피로감이 쌓이게 된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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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야다이 신지가 말하는 “층수의 함정”

일본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는 고층 아파트의 상층부를 “행복을 약속하는 상징”이 아니라,
“신체와 감정을 둔감하게 만드는 공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합니다.

  • 사회적 접촉이 줄어들수록 사람은 더 예민해지고, 더 무기력해진다
  • 높은 곳에 살수록 ‘지상과 단절된 감각’이 생기고, 현실감이 희미해진다

즉, 우리가 더 좋은 삶을 꿈꾸며 선택한 고층 생활이
오히려 ‘살아있다’는 감각을 줄여버릴 수 있다는 거죠.


# 4. 고급 이미지 vs 일상의 피로감

타워맨션이나 고층 아파트는 분명 편리하고
브랜드 이미지도 강합니다.

  • 전망이 좋고
  • 커뮤니티 시설도 잘 되어 있고
  • 입지나 보안, 교육환경 면에서도 우수한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 모든 것 뒤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누구와도 쉽게 연결되지 않는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 재택근무가 많은 직장인,
고령자일수록 이 고립감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 5.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이런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 중층·저층 아파트로 돌아감
  • 지방 이주나 소규모 공동체 주택
  • 또한, 서로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연결된 커뮤니티 주거 모델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꼭 옆집 사람과 매일 인사를 나누진 않더라도,

  • 동네 슈퍼에서 얼굴을 보고,
  • 계단에서 마주칠 수 있고,
  • 무언가를 공유하는 생활이 가능한 구조

그런 공간이야말로 ‘살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해주는 환경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 결론

높은 곳에 산다고 해서, 삶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건 아닙니다.
층수가 오를수록 ‘프라이버시’는 생기지만, ‘연결’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 증후군은 단지 건축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최근 일본에서는
‘난카이 대지진(南海トラフ地震)’ 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면서,
고층 타워맨션의 안전성과 실질적 거주 편의성을 다시 따져보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는 삶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을 열면 안부를 묻고, 가끔은 음식을 나누며,
고립이 아니라 연결이 일상이 되는 삶.
그런 ‘이웃의 회복’을 꿈꾸는 마음이,
지금 다시 조용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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